[성명서] 조세철학과 비전이 없는 정부 세제개편안을 비판한다 증세 없는 복지공약을 내걸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4번째 세제개편안을 보면서 대한민국 납세자는 또 한 번 착잡함을 금치 못하게 된다. 잘못된 세금인식이 어떤 대가로 돌아오는지 대한민국 납세자들은 똑똑히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깨달아야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한국납세자연맹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세율인상만 증세가 아니다 비과세감면 축소 등 실질적으로 납세자의 세 부담이 증가하면 증세인데도, 박 근혜 정부는 시종일관 증세가 아니라고 우겨왔다. 현 정권은 2014년 귀속 근로소득부터 몇몇 소득공제 항목을 세액공제로 바꾸는 연말정산 세법 개정을 단행했다. 당시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라고 솔직히 인정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 바람에 연말정산파동을 겪었다.
그 뒤로도 파동의 원인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연말정산 보완입법을 추진, 면세자 비율이 2013년 31.2%에서 48.09%(2014년)로 17.7%나 급격히 상승했다. ‘국민개세주의’와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정책을 구현하고자 10년간 일관되게 추진해온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세액공제 전환으로 과세대상자의 2013년 198만3101원이던 1인당 근로소득세 결정세액 평균액이 2014년에 293만1673원으로 94만8572원(49.8%)이 인상됐다. 급격한 세부담 증가는 법치주의 핵심인 예측가능성과 법정안정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더욱이 2019년부터 연봉 7000만 원 이상 근로소득자에게 신용카드소득공제 한도를 현행 3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낮춘다고 한다. 연봉 1억200만원 초과자는 당장 내년부터 200만원으로 낮아진다. 연봉 7,000만원이상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기들보다 더 많이 버는 자영업자들은 두고 자기들만 계속 세금 더 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근로소득세는 원천징수와 회사 주도의 연말정산으로 조세저항이 비교적 적다. 담뱃세 등 죄악세 역시 마찬가지다. 현 정권은 이런 조세저항이 적은 세금 위주로 증세를 했다. 이는 조세공평을 크게 해쳤다.
담뱃세수가 급증하는 것을 보면,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를 한다”고 사실대로 말 하면 될 것을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계속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그 후과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조세공평성이 후퇴한 다른 예는 자본소득과 근로소득간, 근로소득과 사업소득간 조세격차가 커진 점이다. 또 이 정부 출범 당시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과는 정반대로 근로소득과 지하경제 소득자간 조세격차 역시 더 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지하경제 개념을 알고 꺼낸 공약인가?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복지재원 중 27조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공약했다. 지하경제의 속성상 단기간 양성화가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대 이는 애당초 실현불가능한 공약이었다.
불법적인 소득을 단기간에 국세청에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현금 받아 자기 집 금고에 숨겨놓은 돈을 국세청이 어떻게 일일이 조사할 것인가. 세금 내고 있는 사업자들을 쥐어짜다가 사업자들이 반발하자 공약은 흐지부지 돼 버렸다.
지하경제의 대폭축소 없이 좋은 정부와 복지국가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지하경제축소 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3. 국가부채는 세금 그 자체다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국가부채증가액은 147조 원에 이른다. 전임 이명박 정부의 전체 임기 중 증가액 144조원보다도 더 많은 금액이 3년 동안 늘어난 것이다.
국가부채는 미래의 세금이다. 부모의 소비를 아이들이 책임지는 부도덕한 측면도 있다. 국가부채 증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현재 세대에게는 ‘복지’를 이야기하고 세금은 주로 미래세대에 떠넘기고 있다.
4. 경제논리 앞세우지만 실상은 자본소득 특혜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주택임대차시장의 안정을 위해 연 2000만 원이하 주택임대수입에 대한 비과세를 2년 더 연장했다. 당초 2016년말까지였던 비과세 시한이 2018년12월31일까지로 연장된 것이다.
지금도 주택임대소득은 소득파악이 안 되고 있다. 조세감면을 연장하는 것은 자본소득과 근로소득 차별정책을 지속하고 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5. 국민들의 동의절차는 필요도 없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 필요가 없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법개정을 하면서 단 한 번의 공청회도 없었다. 세수추계 상세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다. 올해도 세수추계금액이 어떤 기준에 의해 계산되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불투명성은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요 요소다.
6.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오판과 장기적인 비전 부족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소득불평도 해소다. 더 가진 사람, 더 버는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이 ‘공정한 세금’을 구현하는 세제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에서 고소득자의 세 감면 혜택을 줄인다는 취지로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축소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소득자가 주로 혜택을 받는 자녀세액공제 인상을 추진했다. 둘째 출산시 종전 30만 원에서 50만원의 세액공제를, 셋째 출산 시 종전 30만원에서 70만원을 세액공제 해주는 식이다.
6000만 원 이상 근로소득자 세금 감면을 받는 비중을 살펴보니 신용카드는 48.3%, 자녀세액공제는 62.5%로 확인됐다. 자녀세액공제가 고소득층이 더 많은 것이다. 게다가 자녀세액공제를 올린다고 출산이 장려될 리도 별로 없어 보인다.
복지확대와 국가부채 증가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로 증세가 불가피한 점을 인정한다고 치자. 그러면 국민들이 증세에 동의할 수 있는 토대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자본소득과 근로소득간의 차별,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간 차별, 일반국민과 종교인간의 차별을 먼저 철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하경제를 축소해 세금을 성실히 내는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함을 해소해주는 정책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동의와 합의로 증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7월28일
한국납세자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