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산세 파동에 대한 한국납세자연맹의 입장 ================
대한민국 납세자들은 최근 미증유의 경기침체와 물가인상, 취업난 등으로 극심한 실질소득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조세와 각종 부담금까지 전방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작금 상황은 가히 조선시대 '가렴주구(苛斂誅求)'에 견줄 만 하다.
힘없는 서민들의 국민부담 증가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책임 있게 서민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대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국민부담률 증가는 분배와 성장에 대한 관념적 논의 속에서 납세자들의 구체적인 처지에 천착하지 않은 채 강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재산세 파동은 헌법이 보호해야 할 개인의 재산권과 국가의 과세권이 무매개적으로 충돌한 사례다. 이에 한국납세자연맹은 재산세 파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확정, 발표한다. 이번 입장에 담겨 있는 주요 의제는 현행 한국의 재산세에 국한되지 않고, 헌법적 원리가 보호해야 할 포괄적 개인 재산권에도 두루 적용될 수 있음을 덧붙인다.
1. 보유세 강화정책은 전체적 세 부담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올해 건물 및 토지의 시가표준액 인상은 큰 폭의 재산세 인상 뿐 아니라 취득세와 등록세 등 부동산 거래 관련 세 부담을 증가시킬 전망이며, 사회보험인 건강보험료 역시 동반 상승될 것이다.
따라서 재산세인상액, 취득세 및 등록세 세수 증가액만큼 이들 거래세의 세율을 곧바로 낮춰야 국민부담률의 전반적 증가를 막을 수 있다. 또 재산세 과세표준 인상에 따라 자동적으로 인상되는 건강보험료는 올리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조세형평 차원에서 재산세의 부담을 증가시켜야 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거래세 및 유류세의 부담을 낮춰야 한다.
2. 재산세 소급인하는 법률적으로 잘못된 게 없다.
세법상 소급과세금지의 원칙은 납세의무 확정 후(재산세의 경우에는 과세기준일이 지난 후) 세법이 납세자에게 불리하게 개정된 경우, 불리하게 개정된 세법을 납세자에게 소급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납세자에게 유리하게 개정된 세법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
‘개정된 새 법이 피 적용자에게 유리한 경우, 이른바 시혜적인 소급입법을 하여야 한다’는 입법상의 의무는 헌법의 제 원칙에서 도출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런 시혜적 소급입법을 할 것인지의 여부는 입법부의 재량이다. 즉 그 판단은 일차적으로 입법기관에 맡겨져 있으므로 이런 시혜적 입법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와는 달리 입법자에게 보다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자유가 인정된다. (헌법재판소 1998. 11. 26.선고 97헌바67결정 참조)
3. 지방자치의 기본이념은 존중돼야 한다.
기초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을 위해 지방세법에 따라 재산세 세율을 낮추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의 이념에 비춰 문제가 없다. 지방자치의 근본이념은 주민들이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정한 합리적 기준에 따라 조달, 투명하게 집행하고 추후 평가를 통해 재조정 해 나가는 예산지출제도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투기억제와 소득재분배 정책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목표에서 도출된 과제로, 기초자치단체에게 이런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재산세소급입법에 대해 행정자치부와 서울시 등 광역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에게 교부금지급삭감 등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초자치단체를 중앙정부 또는 광역자치단체에 예속 하게하여 지방자치의 근본이념을 해치게 되고 이는 곧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반민주적 행위이다.
4. 재산보유에 따른 사적수익의 절반은 보호돼야 한다.
재산수익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법적 지위로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헌법상 재산권의 보장원칙에 따라 재산권의 사용은 동시에 사적 효용과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 따라서 재산수익은 한편으로는 조세부담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자 개인에게 사적 수익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구체적으로 재산의 기대수익에 대한 조세 전체의 부담을 고려해 “재산수익의 절반이 납세자의 수중에 남아있는 경우에만 과세가 헌법상 정당화된다.”고 보고 있다. 가령 시가 1억원 짜리 부동산의 1년간 임대수익이 400만원(이자율 4%)이고 관리비용을 뺀 순소득율이 70%(280만원)라면, 소득세 등 각종 공과금과 재산세의 합이 140만원을 넘으면 이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5.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세율은 재고돼야 한다.
과표 현실화율이 100%일 경우 현행 재산세 최고 명목세율 7%는 13년 만에 국민의 재산을 국가가 단계적 무상 몰수함을 의미하므로 이는 헌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과표 현실화 수준에 맞게 재산세율이 인하돼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재산세는 다른 조세부담과 함께 작용하여 재산의 실체, 재산원본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정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능한 수익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책정돼야 한다”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를 주목한다. 이 판례에 따르면 재산세란 이미 과세된 소득으로 구성된 재산의 보유에 대한 주기적인 조세다. 재산에 대해선 이미 소득과 수익에 대한 과세로, 재산의 구체적인 객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미 간접세의 형태로 과세되는 현행 조세법의 체계에서 살펴보면, 이미 사전에 다중적인 부담을 받는 재산에 대한 보완적인 과세에 있어서는 입법자는 헌법적으로 단지 협소한 형성의 공간을 갖는다. 재산원본 보존과 정상적 기대 수익한도 이내의 납부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재산에 대한 과세는 결과적으로 납세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그의 재산관계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단계적 몰수를 의미하게 된다. 이런 재산의 존속보장은 과세되는 소득으로부터 재산세를 납부하는 현행 세법에서도 관철돼야 한다. 한편 재산세의 채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납부되는 소득은 소득세에 산입되지도 않고 소득세의 과세표준에서 공제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전 부담도 소득세의 부담을 측정함에 있어서 고려돼야 한다.
6. 급격한 세 부담 증가의 경우 반드시 납세자의 동의를 구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최근의 ‘재산세 논쟁’이 ‘파동’의 수준으로까지 언급된 데는 납세자의 급격한 세 부담을 증가시키면서 직접 담세자인 납세자의 동의를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은 정부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겠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차제에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세금 대신 납세자의 전반적 동의를 거쳐 부과되는 세금이 궁극적으로 민주적 법치국가의 선진 재정 문화를 싹 틔울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