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소지 큰 '강제외부세무조정', 국회 졸속심의 우려
납세자연맹, "법원, 납세자 스스로 작성한 서류도 적법" 일관된 판결..."입법부는 왜 외면하는가?"
수임자격사 범위문제로 여론 호도...19대 국회가 척결해야 할 이권, 강제조항 없앤 대안입법 시급
법원이 '납세의무자 본인이 작성해 국세청에 제출한 세무조정계산서는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일관되게 해왔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는 사법부 판결의 근본 취지를 무시한채 어떻게든 연간 1조원의 세무사 매출을 보장해주는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를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중대한 '이권'이 ‘세무사와 변호사 등의 다툼’으로 호도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소속 일부 위원들조차 과거 '행정사제도'처럼 전근대적인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간과한 채, 외부조정을 수임할 수 있는 전문자격사의 범위만 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납세자연맹(회장 김선택)은 16일 “사업자가 스스로 작성해 제출한 세무조정계산서의 적법성을 인정한 판례(2003누 932 광주지법)는 물론 ‘세무조정계산서는 성질상 납세자의무자 본인이 작성할 수 있는 것’이라는 취지의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2두 23808, 2015년8월20일)이 있지만, 입법부가 판결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고의로 무시한 채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광주광역시 거주 김아무개씨는 지난 2002년 종합소득세 신고 때 세무사를 거치지 않고 세무조정계산서를 스스로 작성해 제출했다. 김씨의 남편이 세무공무원 출신의 경영학 박사라서 굳이 세무사에게 세무조정계산서 작성을 맡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할 서광주세무서는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 무신고가산세를 물렸다. 불복절차를 거쳐 광주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김씨는 1심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은 판결문에서 "소득세법 시행령(제131조 제1항)이 모법에서 제한하지 않은 '세무조정계산서 작성권자를 제한, 신고불성실가산세의 과세대상 범위를 확장했다"면서 "이는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돼 무효이고, 무효 조항에 근거한 과세처분 또한 무효"라고 판시했다.
서광주세무서장은 광주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곧 김씨에게 세금부과처분을 취소하고 해당 세금을 돌려줘 항소심이 취하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역시 지난 8월20일자 판결문에서 "현행 소득(법인)세법에서는 과세표준 신고, 서류 첨부의 주체는 모두 납세의무자로 명시돼 있으며, 세무조정계산서의 작성 주체 역시 납세의무자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전원합의체는“세무조정계산서는 성질상 납세의무자 본인이 작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기획재정부령에서 외부전문가에게 맡기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와 함께 "(강제외부세부조정제도는) 납세의무에만 관련 된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라면서“강제로 외부세무조정계산서 작성을 맡길 의사나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납세의무자가 스스로 작성할 기회를 차단하게 되면 재산권을 제한하는 정도가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그러나 이와 같은 법원의 판결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고도 모른척 하면서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를 확고하게 법제화하려는 행정부(기획재정부) 편을 들고 있다.
국회 기재위 조세소위 관계자는 "지난 11월10일 이후 진행된 3차례 소위원회 회의 결과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소위 위원들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을 돕는 상임위 입법조사관과 전문위원들의 법률안 검토보고서가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를 소득(법인)세법에 반영한 법률안 검토보고서에는 법원 판례의 핵심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입법조사관은 '납세자의 재산권 제한 사유 등 납세의무와 관련된 중대한 사안은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는 점만을 고려, 정부 입법안에 대해 “외부세무조정제도의 근거를 법률에서 직접 규정하려는 것으로서 필요한 입법으로 판단된다”고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했다.
납세자연맹이 직접 확인한 결과,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입법조사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적시된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 등 행동자유권’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으며, 외국의 세무대리제도의 개념과 외부세무조정제도에 대해서도 비교 조사하지 않았다. 법률안 검토보고서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납세자연맹은 “국가가 강제로 외부세무조정제도를 규정하는 정부의 졸속적인 소득(법인)세법 개정안 대신 납세자 스스로 작성한 세무조정계산서를 적법한 세무서류로 인정하는 대안입법이 필요하다”면서 “19대 마지막 국회에서 재정분야의 고질적 '이권'중 하나인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를 폐지하는 데 앞장 설 국회의원이 있다면, 납세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과거 행정사의 도장을 받아오지 않으면 민원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 역시 행정사제도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권(rent)을 가진 집단은 적극적으로 이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들의 이권 때문에 피해를 보는 다수 사람들은 흩어져 있다”면서 “흩어진 대중의 힘으로 ‘적폐’를 근절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국회의원의 역할이 필요한 것임을 19대 국회의원들은 잘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끝)
[참고]
[칼럼]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는 총 사가지고 군 입대 하라는 것(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