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휘발유 가격의 48%, 경유는 40%, 등유는 18% 정도가 세금이다. 수입원가(46%)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유류관련 세제의 합리적 개선방안’이란 제목의 논문(장기용·2007년)을 보면 소득 대비 휘발유 유류세 부담은 심각하다. 한국을 100으로 할 때 미국 4.7, 일본은 25.6 등으로 한국 납세자들은 소득 대비 유류세 부담이 일본보다 4배, 미국보다는 20배 이상 높다.
2010년 기준 관세와 수입부과금을 제외한 유류세는 총국세수입의 14%(약 25조원) 정도로 그해 근로소득세(8.9%·16조원)보다 많이 걷혔다. 2010년에 국세 중 간접세 비중은 52.1%였다. 유류세가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이고 근로소득세액 대비 56%나 더 많이 징수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유류세 비중이 이렇게 높아진 것을 보면 “조세 기술이란 거위 털을 뽑는 기술과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프랑스 재정총감이었던 콜베르가 한 이 말의 의미는 ‘국가가 세금을 걷을 때에는 조세저항이 없는 방법으로 징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세금은 가능한 많이, 그러나 국민이 잘 감지하지 못해 조세저항 없이 손쉽게 걷는 것이 좋다. 한국 유류세가 딱 좋은 예다. 한국에서 넓은 의미의 유류세라는 용어는 5가지 세금과 2가지 준조세 항목을 통칭한다. 관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이 세금이다. 여기에 수입부과금과 판매부과금이 붙는다. 가격이 오르면 세수가 늘어나는 종가세와 양에 부과되는 종량세가 혼합돼 있다.
유류세 관련 세수통계는 제대로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구조다. 조세 전문가들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세제를 복잡하게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조세저항을 줄이고 세수를 늘리려면 세목 수를 늘리고, 세제를 아주 까다롭게 만들면 된다.
현행 유류 관련 세제는 공평성을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 국가가 세금을 걷을 때에는 마음대로 걷는 게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조세공평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소득에 관계 없이 동일하게 세율이 적용되는 유류세 비중이 높다는 것은 이런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서민 납세자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팍팍하다’는 표현도 사치스럽다. 곧 아빠가 되는 외벌이 직장인 A씨는 자동차정기점검 일을 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많이 사용한다. 회사는 A씨에게 연봉 2400만원과 별도로 유류비 10만원을 매달 지원한다. A씨는 이 돈을 제외하고 한 달에 주유금액으로 40만원을 자비로 쓴다. A씨가 휘발유값으로 지출하는 돈은 자신의 연봉(2400만원)의 20%(480만원)다. 이 중 유류세로 230만원(소득의 9.6%)을 낸다. 연간 납부한 근로소득세는 23만원 정도로 유류세가 근로소득세의 딱 10배다.
아파트 알뜰장터에서 트럭을 몰고 장사하는 B씨는 2008년 월 25만원 수준이던 기름값이 지난해 월 40만원까지 늘면서 할 수 없이 장사를 포기했다. 그는 연간 수입 3000만원의 16%인 480만원의 경유값을 지출하고 그중 40%인 192만원(소득의 6.4%)을 유류세로 납부했다.
한국에서 가처분 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비용으로 쓰는 빈곤층이 5년 전 기준으로 8%라는 통계는 ‘유류세가 저소득계층과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 매우 큰 부담이 된다’는 또 다른 증거다. 영세자영업자들은 유류세 등 간접세로 많은 세금은 내고 있지만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례가 많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최근 휘발유 소비량을 분석한 결과 소득 수준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의 세금 감면 혜택이 6배 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을 근거로 “유류세 인하가 반(反)복지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딱한 논리다. 유류세 인하분이 서민의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고소득층이 납부하는 유류세의 기회비용은 ‘여유자금’이지만 서민 유류세의 기회비용은 식료품과 자녀교육비 등 직접 생존권과 관련된 지출이라는 점도 무시되고 있다.
유류세는 유류수급 조정과 경기조정 가격안정 등이 필요할 때 30% 범위 안에서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국제원유 가격과 환율이 오르면 수입원가가 높아져 유류세를 구성하는 세금 중 관세와 부가가치세는 자동 증가한다. 매년 1조원가량 세수가 증가했다. 2010년 교통세 세수는 2009년보다 38.4%로 증가했고, 세수 예산인 11조6950억원보다 2조2751억원 많은 13조9701억원이 초과 징수됐다. 초과징수율이 19.45%로 국세 중 가장 높았다.
작년에도 유가 인상에 따른 유류세 초과징수 규모가 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인상으로 시름이 깊어가는 가계와 가만히 앉아 증세를 즐기는 정부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납세자연맹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유류세 중 탄력세인 교통세(-30%)와 할당관세(-40%)를 최대 한도까지 적용할 경우 ℓ당 315원까지 당장 휘발유값을 내릴 수 있다.
정부는 최근 유류세 인하 대신 화물차운전수나 장애인 등 생계와 기본권을 위해 차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유류세를 환급해주겠다고 했다. 부과할 때는 모든 납세자에게 일률적인 소비세를 부과해놓고 내릴 때는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인하하겠다니 기가 막힌다.
유류세 인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부채는 늘고 세수가 부족하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유류소비를 줄이려면 고유가정책을 써야 한다. 환경오염 교통사고 등 외부 불경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고유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 정치인들은 세금을 더 걷을 궁리를 하기 전에 유류세 인하가 저소득층에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혜택을 주는 가장 좋은 복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류세를 내려야 독점가격 규제 명분이 생겨 물가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낭비되는 예산을 시급히 찾아낼 계기도 된다. 기업이 기름값으로 쓰는 돈을 고용 촉진으로 돌릴 계기도 된다.
김선택 <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